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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퇴사를 하고 사업자등록을 또 했다. 퇴사를 하고 소속감이 없어졌기 때문인지, 왠지 사업자는 내야 마음에 안정감이 들 것만 같았다. 매출이 있으면 세금을 내면 되고 없다면 세금조차 내지 못하니 사업자등록을 하는 것에 망설일 것은 없다.

어차피 꼬박꼬박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나간다.

첫번째 창업은 25살에 해봤고, 두번째 창업은 31살에 이미 해보았기 때문에 행정적인 절차가 어려운 것은 없었다. 이미 온라인으로 가능한 것이 많아서 실감은 점점 나지 않았다.

앞서 두 번의 창업은 확실하게 목적을 둔 창업이었기 때문에 바로 일거리가 있었다. 그 때는 회사를 다니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창업을 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막상 사업자등록을 했지만, 당장의 일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고, 집을 사무실 주소지로 했기에 아침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창업은 했지만 일은 없고, 출근할 곳도 없다.
그냥 백수나 다름없는 처지라 할 수 있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두어달 정도의 생활비만 있었기에 고정비용을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일이 없을 때 직원 월급이나 한달마다 찾아오는 고정비 지출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결국은 실패로 끝났지만 두번의 창업은 쓸데없이 스타트업 사장놀이를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었다.

그런데 사람은 잘 잊는다. 그게 문제다.



첫번째 창업 실패 이야기


첫번째 창업은 2000년도에 홈페이지 외주업체로 시작했다. 마침 내 첫번째 직장이 SI스타트업이어서 1년간 회사를 다니며 영업이라든지 홈페이지 제작 기술같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전공이 디자인이라 어려움은 없었으나 25살의 나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이 업계를 쉽게 판단했다.

인터넷 버블 시기라 홈페이지만 만들어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지금처럼 고도화된 마케팅의 일환으로 자사몰을 만들거나 브랜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명함처럼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없으면 안되는 것 같은 분위기에서 너도나도 웹사이트를 만들던 시기였다.

영업을 하고 외주를 받아서 뚝딱뚝딱 웹사이트를 만들면 그걸로 끝. SEO 개념 따위는 없었다.

지금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준이었지만 분위기를 타고 홈페이지 제작 외주업체들은 돈을 잘 벌었고, 나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첫번째 직장이었던 회사와 같은 빌딩에 바다가 보이는 해변가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리고, 출근하면 눈 앞에 펼쳐지는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면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사업은 잘 되지 않았고, 대학교 친구들이었던 직원들은 스스로 갈 길을 찾아 다 떠나갔다.

대학생 때 PC방 창업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PC조립하고 납품하며 벌었던 피같은 밑천 5천만원은 6개월만에 전부 없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평범하게 학교 졸업하고, 취업해서 직장이나 다녔다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땟을까? 생각해본다.

타인에게 한 번도 말해본적은 없지만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몇몇 시점이 있다. 그런 시점이 왔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선택을 한 것은 스스로의 결정이니 남탓할수도 없지만, 중요한 기로에 서 있을 땐 상담을 해주는 조언자는 필요하다.

아쉽게도 난 그런 사람이 없었다.





두번째 창업 실패 이야기


두번째 창업은 제대 후 컴퓨터학원에 1년 정도 강사로 일할 때 알게 된 제자 2명과 출판사를 차렸다. 같이 하자고 했을 때, 두명의 제자는 학원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이었는데, 취업을 할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했었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당시 국가공인자격증 과정을 진행했다. 나름의 노하우로 기존의 다른 출판사 수험서와 다른 풀이방법으로 합격률을 높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었는데, 이 두명이 내 수업을 받고 한 번에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과목을 진행하기 위한 수업자료에 불과했으나, 내가 만든 교재로 공부한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시험만 응시하면 합격을 하고 자격증을 받았다. 100%의 합격률을 자랑하는 학원의 대표과목이 되어버렸다.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학원에서 원장과 여강사들 사이에 트러블이 좀 생겼다. 평소에 원장의 독단적인 행동을 싫어했던 나는 굳이 총대를 매고 원장과 한바탕 전쟁을 치뤘고 그후 학원을 그만두었다.

학원을 그만둘 빌미가 필요했다. 제대하고 일주일만에 합류한 첫 직장이었지만, 대학원 박사과정을 갈 계획이어서 오래 다닐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학원에서는 나름 실력있는 강사로 소문도 났고, 기본 강의급여 이외에도 인센티브를 독차지하는 성과를 매달 만들어서 벌이도 좋은 편이었다.

일년간 차곡차곡 모아둔 돈이 있으니, 다시 창업을 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흔히 회사라고 부르는 조직에서 제대로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취업보다는 창업을 하고 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잠깐 언급한 첫 회사는 대학교 4학년때 교수님이 소개해준 SI스타트업이었는데, 나보다 한 살 많았던 금수저가 오너로 있는 곳이었고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창업자금 5억은 1년 반만에 다 날리고 회사는 폐업했다. 매번 새 프로잭트를 했고, 항상 프로젝트 막바지에 엎어버리는 이상한 회사였지만, 사장놀이를 하는 오너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두번째 창업도 다 계획은 있었다.

내가 만든 교재로 책을 직접 만들고 판매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은 길었고, 교통비와 식비만 제공하던 출판사를 오랫동안 다닐 직원은 없었다. 그렇게 두명의 제자였던 직원들은 취업준비기간을 나와 같이 보내고 각자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를 제외하곤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직원들은 나가고 출판사 사무실도 문을 닫았지만, 폐업신고는 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혼자서 집필하던 수험서를 계속 썼고, 샘플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렀다.

그리고 학원에서 벌어둔 돈도 다 없어졌다.
1년동안 하루 9시간을 강의하고, 주말특강까지해서 모아둔 돈은 다 까먹는데는 반년이 걸렸다.

2007년 아직 제주도 이민열풍이 불기 전에 갑자기 제주도에서 일을 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학원에서 취업과정에 있던 수강생들에게 워크넷 등록 요령을 가르치다가 샘플로 올려둔 내 이력서를 보고 누군가가 연락을 했다.

워크넷에 다시 접속해보니 취업 희망지를 적는 란에 1순위가 해외였고, 2순위가 제주도였다.

전화 통화를 한 분은 제주도에서 직업훈련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이었고, 마침 부산에 와 있는데 지금 가능하면 김해공항으로 와서 면접을 볼 생각이 있냐고 말했다. 비행기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았다고, 바로 미팅을 하자고 했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지만,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어렸을 때 한 번 쯤은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기에 공항에서 미팅을 하고 그렇게 제주도에 거기로 결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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